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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생각

#사랑이 끝난 뒤에야 알게 되는 것

by 리따씽 2020. 8. 4.

Love Balloon 무문Love Balloon 무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길을 가다가 만나기도 하고, 모임에서 만나기도 한다. 술집에서 만날 수도 있고, 운동을 하면서 만날 수도 있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소개를 받기도 하고, 이미 알고 지내던 사람이 좋아지기도 한다. 너무 익숙해서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장소에서 만나기도 하고, 처음 가보는 낯선 환경에서 마주치기도 한다. 어디서든 만날 수 있지만, 그래서 어디서도 못 만나는 사람도 많다. 근데 왜, 어째서, 무슨 연유로 그들은 만나게 되었을까?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둘이 눈을 마주치고, 심장이 뛰고, 별말을 하고 있지 않아도 웃고 있다면, 사랑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호르몬이 어떻고, 유전자가 어떻고, 이런 이야기는 알고 싶지 않다. 그런 설명이 둘의 만남을 단편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전부를 알려줄 수 없다. 아니, 전부를 알려준다고 해도 듣고 싶지 않다. 그저 그녀와 그가 인연이기 때문에 만났고, 그래서 서로를 알아보았고, 서로 보고 웃고 있으면 됐다. 그렇게 사랑은 시작된다.


정말 이 일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서로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세상에서 나와서 각각 다른 선택들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하필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살아오면서 해왔던 모든 선택들이, 그 지난 시간이 오직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해왔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일상에서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집을 나서서 매일 같은 일과를 보냈는데 갑자기 그녀가 나타났다. 똑같은 매일이 지루한 일상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주 똑같은 일상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지루한 일상이 이로써 끝나게 되었다는 게 중요하다.


시작은 마주침이었다. 그가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나중에 물어보았을 때 그녀는 자신이 웃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의 미소는 그 만이 기억하는 첫 장면이다. 그렇게 남녀는 각자가 따로 보내던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상대방에게 문자를 보낸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무엇을 먹는지 얘기하고, 집을 나서면서 조심하라는 통화를 하고, 틈 나는대로 전화와 문자를 보내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모든 것을 알고 싶고, 알리고 싶다. 집에 가서는 밤늦게까지 통화를 하며 그간 살아온 이야기부터, 걱정, 친구들 이야기, 좋아하는 영화부터 음식, 노래 등 끝이 없다. 주말엔 함께 가보지 않은 특별한 장소에 가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여행을 가고, 짬이 나면 주변 산책을 한다. 이때 연인은 거의 모든 것을 함께 한다.


서로를 알아가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내용부터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숨김없이 꺼내어 보여주고 들려준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사람마다 조금은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연인은 부모 형제보다 더 많은 것을 공유한다. 


이렇게 많은 것을 함께 했다면, 그동안 했던 대화를 기억한다면, 그렇게 잘 맞았던 사람이었다면, 왜 갑자기 길 가다 마주치는 사람보다 더 멀어지게 되는 걸까.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한 쪽이든, 양쪽이든 누군가가 찍는 마침표로 사랑은 끝나게 된다.



만남이 기적이었다면, 그동안 해왔던 선택들이 모여 서로를 만나게 했다면, 만난 이후의 선택들은 사랑의 끝을 만든 걸까? 분명 서로 사랑했는데, 어떻게 그 선택들이 모여서 이별을 만들었을까?


사랑이 끝나야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우선 자신의 지질함을 대면하게 된다. 세상 못난 모습을 다 모아놓은 사람이 된다. 또 무엇이 있을까. 미련 없이 모든 것을 해 주었다면 후련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못해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들을 했더라면, 헤어지지 않았을까? 우린 아직 사랑하는 사이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왜 그때는 안 해주었을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했던 걸까.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이별을 하고 힘든 이유는, 사랑이 끝난 뒤에야 아직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아닐까.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잠시 잊고 있다가 마침표를 찍은 후에야 정신을 차리게 되는 걸까. 변명해봐야 할 수 없다. 이별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보다 더 낯설어지는 상황이다. 그렇게 끝이 난다.



사랑이 끝난 뒤에야 알게 되는 것은,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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