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조각들을 생각하면 완벽한 신체비율을 가진 근육질의 미남자들이 떠오른다. 그 옛날에 어떻게 그렇게 완벽한 신체를 가진 사람을, 그것도 저렇게 자연스러운 자세로,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을 전해줄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사실 지금 현존하는 조각상들 중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리스인들은 청동을 사용하여 조각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탓이기도 하고, 중세에 와서 금속이 귀해지자 녹여버린 것으로 추측한다. 그래서 남아 있는 청동상들은 거의 대부분 로마시대에 복제된 것들이고, 그것들을 통해서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들의 아름다움을 추측해볼 수 있다.
#아르카익기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그리스 시기 조각상들은 8등신의 아름다운 신체비율과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러한 조각상들을 만들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진의 좌측은 이집트, 우측은 그리스의 아르카익기에 만들어진 조각상이다. 우측의 그리스 조각상은 남자 조각상으로 '코우로스' 라고 부르며, 여자 조각상은 '코레' 라고 한다.
둘을 비교해서 함께 보면 그리스의 초기 조각상은 이집트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면을 바라보고 서 있는 자세가 매우 경직되어 있고 자연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 조각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후에 만들어진 조각상과는 크게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집트의 것과는 조금 다른 차이점이 있다. 내세의 영원함을 위해 만들어진 이집트의 조각상에는 일체의 빈 틈이 없다. 팔과 몸통의 사이에도, 다리와 다리 사이에도 있어야 할 빈 공간이 전혀 없다. 조각상이 인체의 형상이기는 하지만 빈 틈이 없어 경직된 자세에 더해 더욱 딱딱해 보인다. 조각상 내에 틈이 있으면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걸까?
반면 그리스의 조각상은 팔과 몸통의 형태에 따라, 다리와 다리의 형태가 완벽히 드러나 있다. 이집트의 것을 보다가 그리스의 것을 보면, 살짝 보이는 저 틈으로 인해 시원하다는 인상을 받게된다. 돌에 갖혀 있던 인체가 한 발 성큼 걸어 나온 듯한 인상을 준다.
다른 모습은 세부 묘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로마의 조각상은 자신들만의 규칙성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인체의 세부 묘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리를 보면, 무릎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알아볼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뭉개져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인체의 표현이 부자연스럽다 못해 조각을 하다가 멈춘듯하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조각상들을 만들 때 자신들의 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켜야 하는 규칙도 있었겠지만, 눈을 통해 대상을 탐구하고 이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표현이 아직 서툴긴 하지만 무릎 부분을 보면 이집트에 비해 인체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입 모양을 약간 구부리게 표현하면서 미소를 띤 얼굴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아르카익의 미소' 라고도 불리는데, 고대의 조각들을 보면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리스의 조각상은 이집트의 조각상과 매우 비슷하면서도, 이제 이집트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보여진다.
#클래식기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스의 조각상들은 자연미와 이상미가 조화를 이루는 경지까지 오르게 된다. '캐논' 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도입하여 이상적인 형상으로 표현하기에 이른다. 수학적 법칙에 근거하여 인체 각 부분의 이상적 비례를 활용하였고 이를 통해 전체와 부분이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인 비례를 강조하였다. 아르카익기에 나타난 '아르카익의 미소' 라 불리는 고졸한 미소는 사라지고, 억제된 감정과 사색적 표정이 나타나게 된다. 웃겨나 울거나, 인간의 감정이 드러나는 표정이 드러나지 않으니 조각상의 전체적 분위기는 침착하고 차분하다. 그러면서도 콘트라포스토 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자연스러운 운동감을 나타낸다.
- 콘트라포스토
콘트라포스토는 인체에서 보이는 동적인 유연성과 정적인 균형미로 몸 전체에 걸쳐 미묘한 S 자 곡선을 드러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무릎을 약간 구부려 엉덩이를 조금 회전시키고, 그 연결 작용으로써 척추의 만곡이 나타나고 어깨도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정지된 상태에서 동세를 암시하면서도 시각적으로 안정감 있는 균형감을 보여준다.
클래식기의 조각상들은 사실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비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많은 모델들을 관찰하였고, 완벽한 인체라는 이념에 일치하지 않는 불규칙적인 특성들은 완벽히 제거하였다. 그렇게 미화되고 이상화된 인체를 청동조각상으로 만들어낸것이다. 덧붙이자면, 그래서 그리스의 조각상에는 표정이 없다. 개인적인 표정은 단순한 규칙성을 왜곡시키거나 파괴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조각상에는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조각상은 수학적 개념에 따라 명료하고 단순하다. 그러면서도 자신들만의 이상적 규범을 만들어 자연스럽고 생생한 조각상으로 만들어냈다.
또 다른 특이점이라고 하면, 그리스의 조각상에는 초상조각이 없다. 민주주의에 의해 운영되던 그리스 사회에서는 개인이 영웅시 되는 풍조를 경계했다고 한다. 그래서 였을까? 개인을 우상화 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초상조각은 제작하지 않았다.
#헬레니즘기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동방원정은 그리스 미술에 있어서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건축물은 코린트양식과 함께 더욱 높아졌고 장대해졌다. 이오니아식의 소용돌이 장식에 잎사귀 모양을 첨가한 모양의 주두를 가진 건축물은 전보다 장대하고 화려해져갔다.
이때의 조각상들은 사실주의에 입각해 더욱 사실적인 표현이 되었다. 초기의 세련미는 서서히 사라져갔고, 순간의 강력하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모든 형상은 격렬한 몸짓과 나부끼는 옷주름으로 표현되었고, 거칠고 격정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트로이의 사제였던 라오콘은 그리스 군인들이 숨어있는 목마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트로이의 동포들에게 경고 하였다. 이를 발설한 댓가로 그리스 신들의 노여움을 샀고, 그 저주로 그와 두 아들을 죽인다. 위 조각상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라오콘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비틀린 인체와 격정적인 움직임, 고통의 절정인 순간을 포착하여 표현하였다.
이처럼 헬레니즘의 미술은 클레식기의 이상적인 모습과는 달라진다. 순간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포착하고, 이를 더욱 극대화한 장면으로 나타낸다. 움직임, 표정, 긴장 등을 얼마나 더 적절하게 표현하느냐, 더 극적이고 격렬하게 표현하느냐에 대한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고, 수학적인 명료함보다는 시각적인 화려함을 더 쫓았던 것 같다. 미술은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연관성을 서서히 잃어갔고, 시각적인 효과를 표현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드러낸 미술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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